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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

숭례문 방화 사건, 그날의 충격과 현재의 모습

by theblnc 2024.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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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0일 밤, 대한민국의 국보 제1호 숭례문(남대문)이 불타 사라졌다. 한 국가의 문화재가 눈앞에서 전소되는 충격적인 사건, 바로 숭례문 방화 사건이다. 그리고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일으킨 건, 60대의 한 남성이었다. 이유? 토지 보상금이 적어서 불만이었다고 한다.

그날 저녁 8시 50분경, 방화범 채종기 씨는 사다리를 타고 숭례문에 올라 시너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숭례문은 4시간 동안 불길에 휩싸였고, 결국 2층 누각은 90%, 1층은 10%만 남긴 채 전소되었다. 신고는 빨랐지만 진화는 터무니없이 비효율적이었다. 이유? 지붕이 방수 구조라 물이 스며들지 않았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당시에 소방관들이 뭘 했는지 의문이라는 비판이 잇따랐지만, 전통 건축물 화재 진압 경험 부족과 문화재청의 우유부단한 지침이 문제였다는 의견도 많다.

방화범 채종기, 그는 누구인가?


채종기 씨는 이미 2006년 창경궁 문정전에 불을 질렀던 전과자였다. 당시에도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홧김에 방화를 저질렀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처벌로도 멈추지 않았다. 숭례문 방화 사건으로 문화재보호법 위반 및 공공건조물 방화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는 2018년에 출소했지만, 출소 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국보를 태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복구 과정, 하지만 부실투성이


숭례문은 화재 후 5년 3개월의 복구 과정을 거쳐 2013년 5월 다시 개방되었다. 복구에는 약 225억 원이 투입되었지만, 부실 복구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1. 일본산 안료와 공장제 기와


전통 복원을 내세웠지만, 일본산 안료를 사용하고 공장제 기와를 올렸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복구 작업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심지어 단청이 벗겨지고 기와가 깨지는 등 복구 직후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2. 덜 말린 목재 사용 논란


복구에 사용된 목재가 제대로 건조되지 않은 채 사용되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국보 복원이라는 명분 아래 서둘러 공사를 진행한 것이 화근이었다.


3. 재시공 명령


결국 문화재청은 숭례문의 부실 복구를 인정하고, 일부를 재시공하도록 결정했다. 복원 공사의 책임자들은 사법 처리를 받기도 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방화 사건 이상의 파장을 불러왔다. 국보 제1호라는 상징성을 가진 숭례문이 불탔다는 사실은 국민들에게 문화재 보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사건 당시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복구된 숭례문은 예전의 숭례문과는 다른 모습이다. 여전히 복구 과정에서의 부실 논란은 회자되고, 사람들의 기억 속 숭례문은 화재 이전의 웅장함을 담고 있다. 2021년에는 국보와 보물 번호제를 폐지하면서, 숭례문을 ‘국보 1호’로만 기억하는 관행도 바뀌었다.

숭례문 방화 사건은 단순한 화재 사건이 아니다. 이는 문화재 관리의 허점과 복구 과정의 부실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당시의 충격과 슬픔은 오래 남아 있다. 그 사건이 남긴 교훈은 하나다. 문화재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와 정신을 담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다시는 이런 어이없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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